삼국지 인물열전(7) 북방의 효웅. 백마장군 공손찬

● 효웅(梟雄) 사납고 용맹스러운 영웅(올빼미 효. 수컷 웅)

 

난세의 영웅들 가운데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경우보다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중도에 탈락하는 인물은 반드시 탈락할 만한 요인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난세에 만큼 영웅들의 기량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고 정정당당하게 평가되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중도에 포기하는 인물들의 실패요인을 찾아보고 분석하는 것은 뜻을 세우고 꿈을 펼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도에 패망하는 군웅 중의 한 사람인 공손찬의 활약상과 패망요인, 그리고 남긴 업적 등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공손찬(公孫鑽), 자는 백규(伯珪). 중원의 최북방인 고구려와 인접한 요서지방의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떄부터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으며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상대를 압도할만한 풍채를 지니게 된다.

공손찬의 풍채와 인물됨에 반한 그 지역 태수가 자신의 외동딸을 주어 사위로 삼은 뒤 당대의 석학 노식의 문하에 유학을 보내게 된다.

거기서 공손찬은 나이 어린 유비를 만나 함께 수학하였고 후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게 된다.

황건적이 창궐하자 고향으로 돌아온 공손찬은 그곳 청년들을 규합하여 황건적 토벌에 앞장섰고 북쪽

변방을 어지럽히는 선비족과 오환족을 평정하여 용맹을 떨치면서 당당히 군벌로 성장했다.

또한 평태수로서 동탁을 토벌하는 17제후 연합군에도 참여하면서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그때 유비.관우.장비 삼형제도 그의 진영에 함께 있었다.

연합군이 내분에 휩싸여 제후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공손찬도 군마를 이끌고 근거지로 돌아가 기업을 일으킨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근차근 평정해 나가면서 삼국지 전야에 등장하는 군응들 중에서 가장 먼저 당당한

세력을 갖추는 북방의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이 무렵 공손찬은 하북의 군웅 원소와 기주를 두고 다투다가 서로 원수가 된다.

두 군둥들은 연일 전투를 벌이며 북방지역의 패권을 놓고 일진일퇴의 공방을 계속했지만 서로 실력이

엇비슷해서인지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당시의 세력들의 분포를 보면 여포를 영입한 동탁은 도성에서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하고있었고 북방의 공손찬은

남양의 원술과 연합하여 원소와 조조의 연합세력과 맞서고 있었다.

그떄 유비는 공손찬의 비호아래 평원 땅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동탁이 죽은 후 황제가 동탁의 잔당인 이각과 곽사에게 쫓겨 낙양 주위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 유비는 공손찬에게 이때를 놓지지 말고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나아가 황제를 받들자고 진언한다.

당시엔 군둥들이 아직 기반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였기 떄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공손찬의 반응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현제의 충고는 고마우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원소가 낙양으로 가는 길을 내줄 리도 없고. 설사 황제를 모신다고 해도 그 득실을 헤아릴 길이 없네. 공연히 낙양으로 가서 제후들의 의심을 사는 것보다 차라리 이곳에 머물면서 내실을 기하겠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마는 공손찬. 황제를 등에 업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은 패자가 되는 지름길임은 물론

정통성 확보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임을...

결국 재빨리 군마를 거느리고 낙양에 입성한 조조가 실권자로 발돋움하지 않는가.

그런데 공손찬은 북방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확립한 것에 만족을 했는지 갑자기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거대한 성채와

누각을 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막대한 식량을 비축하는 등 일가권속들과 함께 안주할 준비를 했다.

이때 조조의 부추김을 받은 원소가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공손찬은 나가서 싸우는 대신 성안에서 굳게 지키는 작전으로 맞섰다.

그러다가 원소군의 주력부대가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쪽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공손찬의 군사들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기도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다급해진 공손찬은 흑산적의 우두머리 장연에게 밀계를 적은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자를 사로잡은 원소가 그 계략을 역이용하는 바람에 참패하여 공손찬은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만다.

이어 원소군이 땅굴을 파고 누각 안으로 들이닥치니 도망쳐 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공손찬은 처자식을 먼저 죽이고 스스로 불타는 역경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고 만다.

백마(白馬)를 타고 전장을 누비면서 맨 먼저 기업을 일으켰던 북방의 효웅(梟雄)치고는 참으로 비참한 종말이 아닐수 없다.

북방의 패권을 건 두 군웅의 건곤일척의 싸움은 결국 원소의 승리로 끝이 나고 만다.

공손찬의 패망 원인을 한번 짚어보도록 하자.

첫째. 대국을 보는 안목이 너무나 부족했다. 유비가 황제를 받들어 모시자며 낙양으로 출진을 권했을때 모험을 한번 해보았어야했다.

난세에는 도박도 필요한 법이다. 또 조조마저도 두려워했던 원소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은 그의 부족한 안목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소와 자웅을 겨루어야 했다면 조조와 연합. 남북에서 협공을 했어야 했다.

둘째. 인재를 모으고 활용하는 데 소홀했다. 특히 그가 뒤를 보살펴 주었던 유비의 안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오히려 떠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유비를 끝까지 곁에 두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패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제발로 찾아온 조자룡 같은 무장을 "속마음을 알수 없다"하여 중용하지 않은 것도 그의 빼놓을 수 없는 실책이다.

셋째. 그 자신의 만심을 경계했어야 했다. 가장 먼저 성공하여 북방의 강자로 발돋움했으나 조그마한 성공에 만족하여

긴장의 고삐를 풀고 만 것이다.

천하가 평정되어 최후의 승자로 남을 때까지 한 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난세에 거대한 누각을 짓고

호강을 생각한 것은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북방의 효웅 공손찬. 북방 오랑캐들을 모두 평정하여 군웅들이 안심하고 중원에서 싸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놓고

또 일개 서생이었던 유비를 거목으로 키워서 중원으로 내보낸 후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바로 그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국지 인물열전(6) 서주자사 도겸

▶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준 도겸

도겸(陶謙). 자는 공조(共祖). 공직생활을 오래한 문약한 선비형 인물로 황건적을 토벌함에 있어

결정적인 공을 세워 서주자사로 임명된 인물이다.

도겸은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조조와 엮이게 된 악연과 유비와의 만남과 인연

으로 인해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주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사후 평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관해가 이끄는 황건적 5만이 북해성을 포위하자 북해태수 공융은 유비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유비는 피를 나눈 의형제인 관우. 장비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북해성으로 향한다.

북해성을 포위하고 있던 관해의 목을 베고 5만이 넘는 황건적을 모두 전멸 시킨다.

이에 공융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유비에게 서주자사 도겸의 중신인 미축을 소개하게 되고

미축은 서주자사 도겸이 처한 딱한 사정을 유비에게 들려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영제가 죽고 어린 소제가 황제에 즉위하자 실권자가 된 소제의 외삼촌 하진이 환관(십상시)의

우두머리인 건석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우두머리인 건석이 살해 당하면서 이에 곧 환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 조조는

부친 조숭에게 속히 가솔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피신 시킨다.

조숭이 그 일족 40여명과 금.은보화를 실은 수레 100여대를 이끌고 서주를 지난다는 소식을 접한

서주자사 도겸은 친히 마중나와 조숭을 맞이하고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조숭이 떠날때에도 도위 장개에게 군사 5백명을 내어주며 호위케 하여 마지막 까지 호의를 베푼다.

 

그렇게 조숭일가의 행렬이 시작되고 어느 산골을 지나던중 소나기를 만나 가까운 산사로 대피 하게 된다.

그런데 장개가 인솔하는 호위군이 갑자기 도적으로 변해 조숭과 그의 일가를 모조리 살해하고

금.은보화를 잔뜩 실은 수레를 탈취하여 달아나는 일이 발생한다.

뒤늦게 이사실을 알게된 조조는 크게 격노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대군을 이끌고 무장 하후돈을 앞세워 서주로 쳐들어 가게 된다.

서주자사 도겸이 조조 앞으로 나아가 자초지정 전.후사정을 설명하였으나 이미 격노해 있던 조조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때마침 강한 돌풍과 함께 큰 모래바람이 일어 조조가 잠시 군사를 물리게 된다.

이에 도겸은 언제 또다시 조조 군사들이 쳐들어 올지 모른다며 유비에게 도와달려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 도겸의 처지가 딱하다고 생각한 유비는 선뜻 도와주겠다고 약조를 한다.

 

유비는 공손찬 에게서 군사 2천명을 지원받아 자신의 군사 3천명과 함께 관우. 장비를 앞세워 서주로 향하게 된다.

북해태수 공융과 청주자사 전해도 각자 군사들을 이끌고 도겸을 도우러 서주에 도착한다.

예상대로 다시 조조 군사들이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고 있자 유비의 장수 용장 장비가 조조의 장수

우금을 거세게 몰아붙여 길을 뚫은사이 유비군은 재빨리 서주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도겸은 그런 유비를 보자마자 그의 기상과 인품에 반해 버리고 만다.

 

"저는 이미 늙고 무능하여 서주를 맡아서 지켜낼 자신이 없소. 공은 한실의 종친이니 이 서주를 맡아서 편안케 해주시오."

하며 서주자사의 패인을 유비앞에 내놓게 된다.

그러나 유비는 이 패인을 제가 차지하게 되면 제가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공을 도와주러 온 것이 된다며 정중히 사양한다.

이런 난세에서는 하나같이 모든 군웅들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데

반해 유비는 저절로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서주자사 자리를 사양하다니...

여기서 유비의 인품을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는 대목이다.

 

유비는 조조의 군사들을 먼저 물러나게 하는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하고. "지난번에 일어난 불상사는 호위대장 장개가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배신해 저지른 일이며 도겸 에게는 아무런 허물이 없으니 부디 조정의 일을 먼저 생각하시고

사사로이 감정을 뒤로 미루시길 바란다".는 요지의 서신을 조조에게 보낸다.

유비의 서신을 받은 조조는 "유비란 놈이 왜 이렇게 건방지냐."며 역정을 냈지만 

 

그때 여포가 비어있는 연주를 급습하여 빼앗고 그 여세를 몰아 복양으로 쳐들어 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게된다.

조조는 연주를 지키기 위해 어쩔수 없이 유비의 화해 권유를 수락하는 답장을 보내고 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연주로 되돌아 간다.

조조가 물러나자 도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또다시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어질지 못한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유비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에 도겸은 다른 제안을 하게된다.

이웃에 있는 소패성에 머무르면서 서주를 지켜주기를 청했고 이 제안은 유비가 흔쾌히 수락한다.

그리하여 유비는 그제서야 공손찬의 그늘에서 벗어나 두 아우 관우. 장비 그리고 그의 3천군사와 함께 소패성에 입성하게 된다.

 

조조와 여포가 연주에서 불꽃 튀는 혈전을 치루고 있는 동안 서주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서주자사 도겸이 병이 들고 말았다.

도겸은 중신 미축과 진등을 불러 "이제 나는 병이 깊어 살아날 가망이 없는데 조조가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 일을 어떡하면 좋겠소?" 하며 의견을 묻는다.

미축이 "조조의 대군을 막아낼 사람은 소패의 유비뿐입니다. 다시 한번 도움을 요청해 보시지요"하고 제안한다.

그 말을 들은 도겸이 유비에게 연통을 넣자 유비는 두 아우와 함께 서주성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겨우 숨이 붙어있던 도겸은 유비의 손을 잡고 "서주의 백성들을 위해 이 패인을 받아 주시오."하고 다시한번 간곡히 청한다.

유비는 이번에도 사앙하게 된다.

결국 도겸은 미축과 손건 등에게 유비를 잘 섬기도록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도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주의 백성들이 떼를 지어 소패성에 몰려가 유비에게 간청을 했고

그런 유비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주의 패인을 받아들이게 된다.

10여 년 동안이나 중원을 떠돌아다니던 유비가 아니던가. 이제 수백리의 땅과 수십만의 인구를 보유한

서주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유비의 부인이 되는 미축의 누이와도 만나게 된다.

 

도겸은 애시당초 조조와 대적할 만한 실력도 패기도 없었다.

결국 그는 서주를 유비에게 넘겨줌으로써 유비가 군웅의 일각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조용히 사라졌다.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임무는 거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촉의 유비를 정통으로 세운 삼국지연의는 "도겸은 사람됨이 온후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며 도의심이 깊은 인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리고 조숭의 죽음에는 책임이 없고 어진 인물이기 때문에 유비에게 서주자사의 지위를 물려주려한 것이라고 쓰고있다.

 

그러나 위의 조조를 정통으로 세운 정사 삼국지 "도겸전"에는 "도겸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무도한 사람이며 악정을 거듭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조숭의 죽음에 책임이 있고 조조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에 이를 만큼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유비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 것이라고 쓰여있다.

 

사서의 평가는 이렇든 극명하게 갈라진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처한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삼국지 인물열전(5) 무예지존 여포

신이 전쟁을 위해 특별히 창조한 불사신(무신)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갖춘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위연.조자룡.안량.전위.하후돈.황충.서황.방덕.태사자.관우.여포.장비 등 하나같이 모두 일기당천의 무장들이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무예가 가장 출중한 장수는 누구일까?

독재로 한의 황의 황실을 차지한 동탁이 온통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제멋대로 황제를 퇴위

시키고 새 황제를 임명하려 했을때 감히 반대하고 나선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병주자사 정원이었다.

그러고도 무사할수 있었던 것은 그의 뒤에 양자 여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맹호와 같은 기상. 불을 뿜는 눈동자. 양날을 창으로 쓰는 방천화극을 무기로 빈틈없고

늠름한 위용. 삼국지에 처음 등장하는 여포의 모습이다.

포악하기로 소문난 동탁도 이 여포의 기세에 눌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여포도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와 금.은 보화에 눈이 멀어 양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휘하에 들어가데 된다.

여포(呂布). 자는 봉선(奉先).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할 인물로 궁마와 창검의 명인으로

신이 전쟁을 위해 특별히 창조한 불사신. 무신(武神)으로 표현되어 있을 정도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무장들 중에서도 최고의 무예를 지닌 인물이다.

여포가 삼국지 초반부에 등장하여 눈부시고 화려한 무용을 떨치는 모습. 그리고 아깝게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사라지는 모습까지 여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영웅들의 난세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공손찬. 원소. 손견. 조조 등 전국의 17제후들이 모여 동탁을 제거하려 연합군을 구성하게 된다.

포악한 독재자 동탁을 타도하려 하였으나 무장 여포를 앞세운 동탁에게는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눈부시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낙양의 어린이들이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목장에 말은 많지만 말 중의 으뜸은 적토마라네.

낙양에 호걸은 많지만 호걸 중의 으뜸은 여포 봉선 이라네.

여포를 삼국지의 최고 무예지존 으로 꼽는 근거로는 우선 호로관 전투에서 유비.관우.장비가

한꺼번에 덤벼들었으나 끝끝내 여포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믿을수 없는 점이다.

유비.관우.장비 세 장수중에서 유비 실력이 관우.장비의 실력에 미치지 못해 제쳐 두더라도

82근의 청룡언월도를 쓰는 당대 최고의 무사 관우. 그리고 1장 8척의 사모를 휘두르는 무쌍의 용장 장비가

동시에 덤벼들었음에도 그를 꺾지 못했다면 여포를 무엇으로 설명할수 있으랴!

그야말로 신이 만들어낸 불사신이 아닐수 없다.

 

믿기지 않는 예가 또있다.

옛날 은나라 주왕때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악래라 불리우던 천하장사 전위. 한고고 유방의 맹장 번쾌의 화신으로 불렸던 허저

그리고 하후돈 과 하후연. 이전 과 악직 등 조조진영의 여섯 장수가 한꺼번에 덤벼들었어도 여포 한 사람을 꺾지 못했다.

무예로는 분명히 어느 누구도 여포에게 적수가 없음은 확실하다.

그는 가히 무신(불사신)으로 불릴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하늘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려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천하제일의 무용을 지닌 여포에게는 불행하게도 사려와 지략이 부족했으며. 심지어 변덕도 아주 심했다.

명마 적토마에 눈이 멀어 양부를 서슴없이 살해하고 주인을 바꾼 여포가 아니던가.

그리고 초선이라는 미희 때문에 두 번째 양부이면서 조정의 실권자인 동탁을 죽인다.

그러나 대권을 차지할 만한 그릇은 되지 못했던 것일까. 동탁의 부하 장수들인 이각과곽사 에게 쫓겨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천하의 여포가 말이다!

여포는 결국 서주의 유비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어느날 유비가 남양의 원술을 치는 사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유비의 뒤통수를 쳐서 서주를 빼앗는 등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게된다.

또한. 자신의 딸을 원술의 아들과 정력결혼 시키려다 중도에 포기하는 등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줏대없이 좌충우돌 하기도 한다.

여포는 조조의 대군에게 포위되었을때 모사 진궁은 여포에게 조조를 물리칠 여러가지 계책을 알려주지만

여포는 끝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처첩의 치맛자락에 파묻혀 되려 진궁을 의심하는 등

아녀자의 눈물에는 솔깃하고 참모의 충간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게 우유부단한 행동으로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여포가 잠든사이에 부하들에게

결박 당하여 조조 앞에 끌려나오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적토마와 함께...

결박 당한채 여포가 조조에게 이르기를!

"승상! 소인 여포. 이렇게 항복하였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승상을 제 몸같이 돌봐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일세의 영웅답지 않게 목숨을 구걸하는 여포를 보고 조조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천하의 여포가 아니던가. 조조는 그냥 살려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옆에 있던 유비에게 슬쩍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도덕군자 같은 유비도 여포의 간악함에 이제는 여포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안됩니다.승상! 그는 적토마 때문에 양부 정원을 살해하고 동탁을 섬기다 또 여자 때문에

동탁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제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천하의 여포 같은 인물이라면 조조나 유비가 탐을 내고 남을 법도 한데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은 것이다.

중원에 군계일학처럼 믿기지 않는 무용을 펼치며 무신(불사신)으로 불렸던 여포 제대로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참수되고 만다.

오히려 그의 부장 장료가 더 당당하고 꼿꼿하게 저항했다.

유비와 관우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지만 장료의 뛰어난 무용과 인물됨을 알아본 조조가 그를 발탁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의가 없는 사람은 곤란하다.

또한 무용만 출중하고 지략이 없는 자는 결코 패자가 될수 밖에 없다.

그것은 이미 400년 전에 산을 뽑을 만한 무용과 군사력을 지닌 항우가 그보다 훨씬 열악한 군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용인술과 지략이 뛰어난 유방에게 진 것으로 이미 역사가 증명 하고있다.

무장 여포는 삼국지를 접할 때마다 참으로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첫 번째 인물이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최고의 무예를 지닌 그가 패권에 도전할 기개를 가졌다면 인격적으로도

좀 더 성숙했어야 했고 탁월한 참모인 진궁의 지략에도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몸을 낮추고 유비나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 한껏 제 실력을 발휘했더라면 청사에

길이 길이 이름을 남길 용장으로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여포! 정말 아까운 인물인것 만큼은 분명하다!!!

삼국지 인물열전(4) 독재자 동탁 - 나라를 훔치다!

 

독재자 동탁 - 나라를 훔치다

 

수양대군. 히틀러. 진시황. 조셉 스탈린. 마오쩌둥. 전 세계에 유명하기로 소문난 독재자. 폭군들이 있다.

이런 독재자들 에게 일관되게 공통점들이 있다.

하나같이 공포정치를 한다는 것과 정당성이나 타협이 없다는것 그리고 절대 적대세력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탁 역시 독재자. 폭군으로 불릴만한 인물이다.

그러나 동탁은 적대세력 에게도 절대 타협하지 않을 뿐더러 일반 국민들에게도 공포정치를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다른 독재자들 보다 폭군으로선 한수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동탁이 어떻게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과정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동탁은 키가 크고 몸집이 거대 했으며 눈매는 가는 눈매이며 총명함을 겸비하였다.

동탁은 유년시절 부터 힘이 장사였으며 활을 쏘는 솜씨기 일품이었다.

말을 타고 활통을 양쪽에 매달고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데 쏘았다 하면 백발백중 이었다.

그는 그런 활쏘는 솜씨로 강족토벌(변방의 오랑캐)에 아주 큰 공을 세우게 된다.

그 계기로 중앙에 동탁 이라는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리게 된다.

천하의 동탁도 황건적의 난 전투에서 여러 번 패하면서 기세가 꺾여 있을 무렵 십상시(조정의 실세)

들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그 댓가로 서량자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변방에서 20만이 넘는 군병을 훈련시키면서 천하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자신의 사위인 이유가 있었다.

이유는 학식이 매우 뛰어난 젊은 참모진 이었다.

그 외 번조. 곽사. 장제. 이각 등 용맹하기로 소문난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회만 엿보고 있던중 드디어 동탁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대장군 하진으로 부터 20만 대군과 함께 도성으로 들어와 십상시 들을 토벌하라는 격문을 받게 된다.

기회라 생각한 동탁은 즉시 20만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진격하게 된다.

도성에 당도하였으나 하진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부하들이 환관들. 궁녀 등 모조리 무참히 살해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반란군을 피해 궁궐 밖으로 빠져 나오던 황제 일행들을 발견하고 동탁이 황제 일행들을 호위하면서 다시 궁궐로 입궐하게 된다.

동탁에게 대권이 너무나 쉽게 굴러들어온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동탁은 기다렸단 듯이 군사들을 풀어 반대파 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도성에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이른다.

병주자사 정원이 여포을 앞세워 저항하려 하였으나 애초에 여포를 눈여겨 보고 있던 동탁은

희대의 명마인 적토마를 하사하고 여포를 자기 심복으로 만들게 된다.

이제 동탁은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심복 여포를 얻음으로 인해 이제 그 누구도 동탁에게 대항할 자가 없게 되었다.

이에 동탁은 13대 황제 소제 유변을 폐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어린 진류왕을 새 황제로 옹립하면서

이제 천하가 완전히 동탁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후로 동탁은 철저하게 독재자의 길을 걷게 된다.

폐제 와 황비 그리고 그의 모후인 하 태후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들을 아무렇게나 버리게 했다.

또한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서슴없이 살육을 한다.

그런 동탁에게 조정의 백관들은 행여나 목숨을 잃을까 눈치만 보기에 급급했다.

그는 황제나 다름없는 권력을 누리면서 틈만나면 살인을 저지르고 그야말로

온 천하에 악행을 일삼는 전형적인 폭군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언 어느날 동탁은 수십 명의 미희를 자기 마차에 태우고 성 밖 매원을 지나고 있을때쯤

때마침 젊은남.녀 한쌍이 동탁의 마차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들을 본 동탁은 농사꾼 주제에 밭에서 일은 하지 않고 돌아다니니 괘씸하다며 군사들을 보내 그들을 잡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사지를찢어 죽여라고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군사들은 두 남.녀 손발을 네 필의 소에 매달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바로 거열형에 처한 것이다.

두 남.녀의 사지가 떨어져 나가 흘린 피로 매원을 붉게 물들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동탁은 "오늘은 꽃 구경보다도 더 재미있는 구경을 했구나"하고 손뼉을 치며 좋아 하는게 아닌가.

이처럼 동탁은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권력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공손찬. 조조. 원소. 손견 등 각지의 군웅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각자 내분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동탁은 도성 낙양을 모조리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게 된다.

장안에 천도한 동탁은 장안 교외에다 엄청나게 큰 새로운 궁궐 미소성을 지었다.

그리고 그 궁궐 안에는 20년 치의 군량과 보물을 쌓아놓고 있었으며 미희 800명을 뽑아 밤.낮으로 주지육림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일가들을 모두다 조정의 요직에 임명하는가 하면 그의 눈과 귀가 되도록 해놓고 제위를 찬탈할 기회맛 엿보고 있었다.

동탁은 자신이 지은 미오성에 상주하면서 보름에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 장안으로 출사했다.

통탁의 마차가 지나가는 날에는 연도에는 모래를 깔고 보호막을 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고

조정의 중신들은 행여나 목숨이 달아날까 하나같이 나와서 도열을 했다.

민가에서는 밥 짓는 연기마저 피우지 못하고 동탁의 마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빌었다.

마을사람 들은 행여나 동탁의 눈에 벗어나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서 였다.

그러나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의 위세도 조정 원로인 사도 왕윤의 주도하에

그의 수양딸인 초선의  미인계를 앞세워 연환계에 빠져 심복인 여포에 의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해 나이 54세 대권을 거머쥔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다.

동탁이 죽자 온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잘려나간 머리는 동네 어린이들의 축구공이 되었고 그의 목없는 시신에는 심지를 박아

불을 붙였는데 뱃가죽이 얼마나 기름으로 가득찼던지 밤새 불이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동탁이 얼마나 무자비한 폭군이었는가. 백성들의 한이 얼마나 서려 있었는가 잘보여 주는 대목이다.

적대세력 들을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백성들을 억압하는 데는 공포정치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그런 공포정치가 언제까지 갈것이라 생각했던가.

그런 공포정치가 끈임없이 이러 질수록 적대세력 에게는 더욱 단단하게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비참한 최후로 맞게 하는 공포정치의 결말이다.

그러다 보니 독재자는 차츰 광란적인 가학심리에 빠지게 되는데 그 방법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적대세력을 더욱 단합하게 만들어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세계적 독재자. 폭군들을 보면 대부분 처참한 비극으로 끝나는데 그 이유는 자기자신이 저질렀던 악행에 대한 업보이다.

그렇게 보면 악행과 살인을 밥 먹듯이 일삼은 폭군 동탁도 결코 예외일수는 없다.

자기전 따뜻한 물한잔 반드시 마셔라!!!

잠들기전 따뜻한 물한잔 반드시 마셔라!!!

우리가 보통 수면상태에서 모든 신체 및 내장기관들 오장육부 들이

하루동안에 유일하게 활동을 멈추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활동을 멈춘 상태가 되면 그 동안 몸속에 축척되어 있던 모든 독소들을 대.소변 으로 모두 내뱉게 된다.

우리 몸의 수분은 70%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의 수분은 80% 적정량이다.

수분80% 적정량을 유지하려면 물을 자주 많이 마셔주면 된다.

수분이 70% 이하일때 집중력이 부족하고 피부가 건조해지고 입안이 건조해 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장 중요한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될수 있으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수분을 많이 보충하여 우리 몸의 수분80%를 유지 시키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하루2L씩 매일 수분을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뜨거운 물보다 찬물을 많이 마시면 위벽에 영향을 줄뿐만 아니라 심장 및 간에 영향을 주어

간암 환자는 반드시 찬물을 마시면 안되고 따뜻한 물이나 미지근한 물을 마셔주어야 한다.

빈속에 따뜻한 물을 마셔주면 건강에 아주좋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마시는 물 한잔이 건강에 좋은만큼 잠자기전 마시는 물 한잔도 보약과 다름없다.

잠들기 전에 물을 마셔주지 않으면 우리가 수면중에 침이 분비가 되지 않아 입이 바싹 마르고 갈증이

생길 경우가 있는데 자기 전에 물 한잔 마셔주면 입이 마르지 않고 갈증이 생기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서도 입안이 개운 하다는걸 느낄수 있을 것이다.

자기 전 따뜻한 물 한잔의 좋은점을 한번 알아보도복 하자.

 

 

◆ 평소 변비가 심하다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면 잠들기전 반드시 수분을 섭취하도록 하자.

변비에 수분을 섭취하면 변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취침전 따뜻한 물 한잔 마셔주면 수면중에 장 운동을 원할하게 하고 자고 일어나면

나쁜 독소들을 대.소변 으로 모두다 배출시킬수 있다.

변비나 소화불량 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반드시 자기전 따뜻한 물한잔 마셔보도록 하자.

 

▶ 자기전 수분을 보충해주면 뇌경색과 심근경색을 예방할수 있다.

심장질환은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자주 발생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수면중에 수분이 많이 빼앗기게 되면 신체내 혈액이 묽어지면서 혈액이 탁해지기 때문이다.

물 한잔으로 인해 수분을 보충하고 혈액을 맑게 해줘 심장질환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몸이 쉽게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면 잠 들기전 따뜻한 물 한잔이 좋다.

수면중에 수면 리듬을 찾아줄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 에도 효과적이다.

하루가 고단하다면 잠들기전 꼭!!! 따뜻한 물한잔 마시고 잠을 청하도록 하자.

 

■ 요즘 시대에 장시간 PC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을 매일 같이 하는 현대인이

많이 늘어나면서 눈의 피로는 일상적인 질환이 되어버렸다.

우리 몸에 수분이 충분해야 눈을 보호할수 있고 눈이 건조해 지는걸 막을수 있다.

취침전 물 한잔 으로 인해 수면중에 눈물 분비가 왕성해 지면서 눈에 수분이 달아나는걸 막아준다.

 

● 1시간 이상 잠을자지 못하면 따뜻한 물 한잔이 좋다.

불면증 치료 방법에도 권하듯이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면 따뜻한 물 한잔 마시도록 하고 쉽게 잠이 깨면

억지로 청하지 말고 다시 물 한잔 마실 것을 권한다.

쉽게 잠들고 싶다면 잠 들기전 따뜻한 물한잔 마시도록 하자.

 

♠ 그리고 피부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취침전 물을 섭취하면 수면중에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수분을 유지해 주면서 피부를 좋게 만들어 준다.

또한 피부 노화예방 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깨끗한 피부를 원한다면 잠 들기전 반드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하자.

 

작은 건강 하나에도 사소하지만 물 한잔으로 인해 건강을 지킬수 있다.

그만큼 물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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